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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의 '동아투위' 진상조사 발표 전문] 시사[뉴스]

[진실화해위의 '동아투위' 진상조사 발표 전문]
"중정 탄압에 <동아>사주 굴복해 기자 무더기 해고"
2008-10-29 10:48:42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는 전원위원회에서 지난 1975년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을 조사한 결과, 중앙정보부 주도하에 진행된 언론침해 사건이며 당시 <동아일보> 사측도 중정과 결탁해 광고를 다시 싣는 조건으로 언론인 무더기 해고에 합의했음이 밝혀졌다고 29일 발표했다.

다음은 진실화해위 발표 전문.

유신정권, 언론 통제 수단으로 동아일보 광고 탄압
중앙정보부 주도의 언론탄압 사실에 대해 국가 사과 및 피해 회복 권고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1일 전원위원회에서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에 대해 중앙정보부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진실규명 결정함

○ 조사결과, 박정희 유신정권 하에서 언론자유는 헌법과 긴급조치를 비롯한 각종 법률적 규제와 행정 조치들로 인해 많은 제약과 규제를 받았고 관련부처인 문화공보부도 언론사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했지만, 특히 중앙정보부는 직무범위를 벗어나 동아언론 탄압의 모든 역할을 주도한 것으로 밝혀짐

중앙정보부, 광고 수주 차단해 경영상 압박 가해

○ 중앙정보부는 1974년 12월 중순경부터 1975년 7월 초순까지 지속적으로 동아일보사와 계약한 광고주들을 남산 중앙정보부로 불러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여성동아, 신동아, 심지어는 동아연감에까지 광고취소와 광고를 게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와 보안각서를 쓰게 하는 방법, 소액광고주까지 중앙정보부에 출두하게 하거나 경찰 정보과 직원에 의한 연행 조사 방법, 세무서의 세무사찰하는 방법, 백지광고에 대한 격려광고를 게재한 교수가 속한 학교에 압력을 넣는 방법 등을 사용함
○ 이는 이미 1973년에 조선일보를 상대로 광고탄압 방식을 실행하여 효과를 보았던 수단, 즉 광고 수주를 차단해 경영상의 압박을 가함으로써 언론사 사주를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동아일보사를 탄압한 것임

중앙정보부의 광고탄압은 언론사를 통제하기 위한 것

○ 중앙정보부의 광고탄압은 언론사를 압박하여 정부에 저항하는 기자들을 무력화시키고 언론사를 통제가능한 상태에 두려는 의도에서 비롯됨

○ 동아일보사 언론인들의 해임 시기에 조선일보사에서도 언론인의 해임이 있었고, 기자협회보도 폐간 당함. 당시는 중앙정보부의 광고탄압이 한창인 상태였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간섭과 개입 없이 개별 언론사들 임의대로 기자들을 해임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음

○ 중앙정보부는 동아일보가 광고를 다시 싣기 위해서는 동아일보사의 핵심부서 5개 국장의 인사문제를 협의할 것과 정부 정책에 비협조적이었던 점을 사과하는 기사를 요구함

동아일보에 대한 탄압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

○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이 동아일보사에 대한 부당한 탄압일 뿐 아니라 기업활동의 자유,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히 훼손하고 침해한 것임을 확인함

○ 동아일보사는 1975년 3월 8일부터 5월 1일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자사 언론인 49명을 해임하고 84명을 무기정직 처분했는데 이같은 언론인들의 해임 및 무기정직 이후에 중앙정보부와 동아일보사의 협상이 이루어졌으며, 광고재개 조건으로 동아일보사의 인사문제가 거론되었고, 당시 동아일보사 주필은 3월 8일자 언론인 해임은 광고탄압 때문이라고 발언하기도 함

※ 당시 중앙정보부 담당관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동아일보 광고게재를 위한 최종적인 협상조건으로 동아일보사에서 사과성명을 내고 편집국장 등 5개 국장의 주요 간부들 인사에 있어서도 사전에 중앙정보부와 반드시 협의하는 조건을 제시하였고 신문사는 이를 수용하였다고 진술하였음
○ 결국, 정부의 치밀한 주도하에 진행된 일련의 탄압조치로 비판언론 거세라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판단되자,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 광고탄압 조치를 해제했으며 이 같은 전대미문의 동아일보 광고탄압과 언론인 대량해임은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정책에 따라 자행된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로 밝혀짐

정부 압력에 의한 해직도 언론탄압의 결과

○ 동아일보사는 비록 광고탄압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야기된 경영상의 압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언론기관인 동아일보의 명예와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해 왔던 자사 언론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함으로써 유신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했던 것임

○ 더욱이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그 당시부터 정권의 강압에 의한 해임이라는 점을 시인하지 않고 경영상의 이유로 해임하였다고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유신정권의 언론탄압에 동조하였으며 언론의 자유, 언론인들의 생존권과 명예를 침해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움

○ 진실화해위원회는 국가에 동아일보사와 언론인들을 탄압하여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인들을 강제로 해임시키도록 한 행위에 대해 동아일보사와 해임된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언론 자유수호 노력에 대해 정당한 평가와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통해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함

○ 동아일보사에 대해서도 비록 정부의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의 처지에 있었다하더라도 결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또 정부 압력을 빌미로 언론인들을 대량 해임시킨 책임이 있음에도 민주화의 진전으로 언론자유가 신장돼 권력 간섭이 사라진 이후까지 이들에 대한 아무런 구제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므로, 피해 언론인들에게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는 등 적절한 화해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함

[붙임]‘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 주요 경과

○ 중앙정보부는 동아일보 광고탄압 전부터 각 언론사별로 담당자를 두고, 보도제한조치 이행 요구, 기사의 방향설정, 기사의 크기 등을 요구했으며, 이를 따르지 않는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기자, 주필, 이사, 사주 등 직위를 가리지 않고 회유, 협박, 연행, 폭행, 고문, 사표종용, 해임압력 등을 행사함

○ 1974년 10월 23일 오후 서울대 학생데모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였다고 해서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한 기자들이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자 동아일보 기자들은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면서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 받거나 국민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외부간섭 배제, 기관원 출입 거부, 언론인의 불법연행을 일절 거부하고,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등을 결의함

○ 1974년 10월 24일 밤 9시 20분, 조선일보 기자 150여명이 ‘언론자유회복을 위한 선언문’,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등이 ‘중앙매스컴 언론자유수호 제2선언’, 1974년 10월 25일 한국일보 기자들이 ‘민주언론 수호를 위한 결의문’을 발표하였고, 경향신문․서울신문․신아일보․동양통신․합동통신․문화방송․국제신문․부산일보․전남매일․매일신문․충남일보․전남일보․영남일보․대구MBC 기자들도 언론자유실천선언에 동참했으며,

○ 1974년 10월 26일 산업통신․전북신문․경남일보․전주MBC에서, 10월 27일 기독교방송, 10월 28일 경기신문, 10월 30일 내외경제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 선언을 발표하는 등 1주일 동안 모두 35개 언론사의 언론인들이 동참함

○ 동아일보사는 1975년 3월 8일 부터 5월 1일 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49명을 해임하고 84명을 무기정직 처분함.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당시 여권의 고위층이 동아일보사는 발행인이나 편집인 지배하에 놓여야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발언한 이후 취해졌으며, 또 이러한 인사 조치에 대한 동아일보 언론인들의 항의농성도 통행금지가 있던 1975년 3월 17일 새벽에 정부의 비호아래 동원된 인력에 의해 강제 해산됨. 같은 시기에 조선일보사에서도 언론인들이 대량해임 되었고 기자협회보도 폐간됨
임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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