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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온지 1년만에 음독, 스무살 뚜엣 ‘전신마비’ [한겨레] 시사[뉴스]

한국 시집온지 1년만에 음독, 스무살 뚜엣 ‘전신마비’
[다문화가 미래다] ① 준비 안된 만남
한겨레 박영률 기자 이종찬 기자
» 다문화가 미래다
국내 거주 외국인 수가 전체 인구의 2%인 100만명을 넘어서는 등 단일민족을 내세우던 우리 사회가 어느새 ‘글로벌·다문화 사회’ 문턱을 넘어섰다. 그러나 마찰과 함께 부적응 사례도 늘고 있다. 급속한 다문화 사회 진입에 따른 문화적 충격과 갈등의 해법을 살펴보는 기획 ‘다문화가 미래다’를 6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지난달 22일 오후 2시 베트남 호찌민국제공항 입국장. 휠체어에 몸을 실은 앳된 얼굴의 뚜엣(20·가명) 주변에 가족들이 몰려들었다. 어떤 이는 차마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고, 또 어떤 이는 휠체어에 매달려 서럽게 울었다. 가족도 고국도 변한 게 없었지만, 한국으로 시집간 지 1년여 만에 고국 땅을 다시 밟은 아리따운 스무살 처녀 자신은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그리던 딸과 재회한 초라한 행색의 어머니 응우옌 티 리엔지(50)는 몸이 아파 돌아온다는 얘기만 듣고 나왔다가, 딸이 거의 말도 못하는 등 전신마비 상태가 된 사실을 알고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사흘 뒤인 25일 호찌민시에서 승용차로 4시간 떨어진 동나이성 떤푸현 뚜엣의 고향마을. 이곳에서도 가장 후미진 뒷골목의 초라한 집에서 다시 만난 뚜엣은 컴컴한 움막집 간이침대에 누워 눈만 껌벅였다. 뚜엣의 어머니는 “부부가 쌀국수를 팔아 하루 3만동(약 2천원)을 벌어 겨우 연명하고 있다”며 “시집갔던 딸마저 저렇게 돌아왔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동생을 통해 간신히 의사를 표현한 뚜엣은 “너무 집이 그리웠고 한국으로 무작정 시집을 간 사실이 후회된다”며 “다른 사람들이 나 같은 선택을 한다면 말리고 싶다”고 손짓을 섞어 말했다.
» 한국으로 시집왔다가 자살을 기도하는 등 힘겨운 삶을 살다가 지난달 베트남으로 돌아온 뚜엣(왼쪽)이 호찌민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어머니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호찌민/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벼락치기 결혼’ 7개월만에 남편은 정신병원행
고된삶 못견뎌 음독…베트남 입국장 눈물바다
맞선 하루만의 ‘한국행’은 자살·폭행 등 부작용
» 유형별 외국인주민 현황
뚜엣은 배우자는 물론 다른 문화에 대한 충분한 기초정보나 이해 없이 벼락치기로 진행된 국제결혼으로 불행에 빠진 전형적 사례다. 뚜엣의 고향 마을에도 뚜엣 외에 한국이나 대만으로 결혼이민을 떠난 처녀들이 여럿 있었다.
그는 지난해 8월 국제결혼 알선업체를 통해 스무살 가량 나이 많은 한국 농촌 남편과 결혼했으나, 남편은 정신질환으로 결혼 7개월 만에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몸이 불편한 늙은 시아버지와 시골집에 남겨진 그는 고된 삶을 견디지 못하고 극약을 마셨다.
뚜엣이 귀향한 날 저녁 7시께 어둠이 내린 호찌민시 8구역. 외진 주택가 한켠에 지어진 여관풍 건물 3층에서 합숙 중인 여성들이 줄지어 내려왔다. 낯선 외국 남자들과 맞선 자리에 선 이들은 모두 국제결혼을 위해 베트남 곳곳에서 모여든 시골처녀들이었다.
큰 방 1곳에서 합숙하는 이들은 모두 27명. “담요 한 장씩을 깔고 맨밥에 기껏 국수를, 그것도 하루 두 끼를 먹으며 지루한 기다림만 벌써 몇 달째 하고 있다”고 한 처녀가 귀띔했다. 고향도, 처지도 다른 이들의 목적은 단 한가지, 국제결혼이다. 승용차로 4∼5시간 거리인 껀터성에서 온 21살의 처녀는 “지금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한국 남자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들 예비신부들은 대부분 미인대회 선발 방식의 집단 맞선 뒤 하루 만의 결혼식과 합방으로 한국행이 결정된다.
호찌민시 담셍공원에서 베트남 신부와 결혼사진 촬영을 하고 있던 40대 한국 농민 ㅈ아무개씨는 “이틀 전 한국 결혼정보업체의 주선으로 입국해 전날 웨딩홀에서 60여명과 함께 맞선을 보았고, 오늘 결혼식과 합방, 내일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모레 귀국한다”고 일정을 설명했다. 이런 벼락치기 결혼은 뚜엣의 경우처럼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2004년 이후 4년 동안 한국의 전체 이혼 건수는 줄었지만, 2007년 결혼이주여성의 이혼은 5794건으로 전년보다 44.5%나 늘었다. 남편의 폭행으로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최근 1년 사이 3명에 이른다.
베트남 남부사회과학연구소 쩐홍반 박사는 “국제결혼을 한 베트남 여성의 90% 이상이 10여년 전부터 기업형으로 발전한 베트남의 불법결혼중개 시스템을 통해 한국 등 외국으로 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 베트남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찌민/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기사등록 : 2008-10-30 오후 02:22:31
한겨레 (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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