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지구촌풍경: 피의 다이아몬드 & 킴벌리 프로세스 읽을거리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하는 최고의 보석 다이아몬드. 그게 만일 시에라리온 반군이 예닐곱살 소녀의 손목을 잘라가며 캐낸 것이라면? 끔찍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피의 다이아몬드"의 속내를 알게 되면, 당신은 끼고 있던 다이아 반지를 빼버릴지 모른다.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란 아프리카 내전지역에서 채굴돼 불법 거래되는 미가공 다이아몬드를 가리킨다.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시에라리온 등의 반군이나 정부군이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얻어낸 자금으로 유혈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섬뜩한 별명을 갖게 되었다. 세계 다이아몬드 생산량 15위권 내의 나라 중 9개가 정치체제의 불안정으로 인해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다. 

피를 부르는 다이아몬드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시에라리온의 대통령이나 정부군의 장성들, 반군 지도자들은 다이아몬드 광산 소유자이거나 채광회사들의 대주주들로, 다이아몬드를 팔아 만든 막대한 자금을 무기 구입이나 외국인 용병 고용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조직을 이끌던 요나스 사빔비가 전사하면서 무너지고 말았지만 우익 게릴라 조직인 앙골라 완전독립민족동맹(UNITA)은 1992년부터 2001년까지 40억 달러가 넘는 다이아몬드를 불법으로 팔아치웠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1998년 로랑 카빌라 대통령(2001년 피살) 체제에 대한 반란이 시작돼 지금까지 주변 6개국 군대가 뒤섞여 살육전을 벌이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을 이끌어 가는 보이지 않는 힘은 역시 불법 채굴한 다이아몬드. 시에라리온에서는 반군들이 다이아몬드 광산에 민간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는 과정에서 아이들과 여성들의 손을 잘라버리는 일도 벌어진다. 지난 10여 년 간 다이아몬드의 힘으로 지속된 유혈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만 300만 명 이상. 

전세계 다이아몬드 유통량의 65%를 담당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업체 드비어스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앙골라의 다이아몬드 생산총액 6억1800만 달러 중 1억5000만 달러, 콩고민주공화국의 총생산액 3억9600만 달러 중 3500만 달러, 시에라리온의 총생산액 7000만 달러 전부가 내전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오랫동안 피의 다이아몬드로 얻어진 막대한 불법자금이 합법적인 틀 안에서 세탁되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 시장 관계자들은 이런 다이아몬드는 전체 생산량의 2∼3%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금액은 연간 2억∼3억 달러가 되는 셈이다. 

다이아몬드 시장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최고 품질 다이아몬드의 20% 가량이 부정과 불법의 산물, 다시 말해 장물 혹은 밀수품이거나 돈세탁과 탈세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불법 다이아몬드 시장이 어느 누구도 어떤 다이아몬드가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었으며 어떻게 흘러 들어오게 되었는지 묻고 답할 필요가 없다는 불문율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더러운’ 다이아몬드가 유통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광물 지배권을 둘러싼 분쟁과 갈등 

다이아몬드만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콩고민주공화국 유혈분쟁에 돈을 대주고 있는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적대적인 군사 조직들이 핸드폰 재료의 하나인 콜탄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의 월드워치연구소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한해 서구 선진국 소비자들이 제3세계 반군, 폭압적인 정부, 군벌들에게 벌어들이게 해준 이득이 최소 120억 달러에 이른다. 또 선진국 소비자들의 수요를 만족시켜 주기 위한 광물 지배권을 둘러싸고 지난 10여 년 간 2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삶터를 빼앗겼다. 라이베리아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미얀마에서는 원목이, 아프가니스탄과 콜롬비아에서는 마약이 피를 부르고 있다. 콜롬비아와 수단에서는 유전과 파이프라인이 분쟁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값싼 자원을 착취해 이익을 얻어온 회사들과 부유한 나라들은 이 자원들이 생산되는 지역의 상황이나 환경 파괴에 대해서는 외면해 왔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일상용품에 얼룩져 있는 폭력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몰랐다는 것만으로 면책될 수 있는 것일까. 피의 다이아몬드에 대해 알면서도 내가 산 다이아몬드는 아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콜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지 듣고도 “어쩔 수 없잖아, 그렇다고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란 말이야?” 하며 어깨를 으쓱하고 말아도 되는 것일까. 

몇 년 전부터 세계 NGO들은 피의 다이아몬드의 유통을 금지하는 지구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가장 중요한 노력 중의 하나가 국제적인 인증 제도를 만드는 것이었다. 다이아몬드의 생산지에서부터 국제적인 거래망에 이르기까지 그 경로와 유통과정을 인증하도록 함으로써 최종 소비자가 ‘피의 다이아몬드’를 구입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이를 사랑하라, 그러나 믿지는 말아라! 

2000년 5월 이래 유엔 안보리와 유엔 총회 결의안을 바탕으로 여러 정부, 다이아몬드 산업, NGO들은 인증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모임을 가져왔다. 2002년 11월,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45개 다이아몬드 생산 교역국 대표들은 다이아몬드 국제 인증 시스템인 ‘킴벌리 프로세스’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했고, 지난 1월부터 킴벌리 프로세스가 발효되었다. 킴벌리 프로세스는 다이아몬드 생산 국가들이 발행한 ‘분쟁과는 무관하다(Conflict-free)’는 공인 인증서를 갖춘 다이아몬드만 거래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킴벌리 프로세스에는 독립적인 감시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인증서 발행 과정의 투명성을 감시할 수 있는 규정이나 기구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국가들은 자신들이 생산할 수 있는 양의 3배가 넘는 다이아몬드를 수출해왔다. 그런데도 이들이 발행한 인증서를 믿을 수 있을까? 

1990년대에 벨기에는 다섯 개의 서부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해마다 5억∼10억 달러 어치의 다이아몬드를 수입했는데 이것은 이 다섯 개 국가의 생산능력을 초과하는 양이다. 그렇다면 벨기에가 보증했다고 해서 그 다이아몬드를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정부들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국가 주권과 산업기밀을 해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독립적인 감시 기구의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몇몇 정부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대기업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믿어라.” 그리고는 다이아몬드를 파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시에라리온 반군의 트럭에는 이런 구호가 쓰여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을 사랑해라, 하지만 믿지는 말아라.” 다이아몬드는 사랑도, 신뢰도 아닌 보증과 인증이 필요하다. 그것이 확실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다이아몬드도 “깨끗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강은지 (민족21 기자)

* 출처 : 참여연대, 월간참여사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8110